양파 밭에서

김덕진요셉 2014. 6. 18. 12:16

 

                            양파 밭에서/김덕진

 

술처럼 늘어진 꿈을 벗겨낸 자리에

알람 소리 흥건히 고였다

새벽달이 내려준 사다리를 타고 변증의 해안선에 올라

마음을 담글 수 있는 것은

아침 일찍 일어나 영혼의 기슭을 써레질하는 사람들만의 특권이다

오늘은 먼 곳에 있는 행성을 캐러가기로 약속한 날,

이른 아침을 만지는 눈이 몹시 시원했다

빛으로 엮은 바퀴를 한동안 굴려

황금빛 행성이 촘촘히 박힌 밭에 도착했다

이름 없던 빈자리를 가득 메운 행성마다 깊이가 서로 다른

동그란 무게를 품고 있었다

겨울과 봄, 두 계절을 건너는 동안

농축된 시간의 뿌리를 담은 행성은 위로의 말처럼

금빛으로 눈부시게 해탈했다

홀로 고난의 배경을 안으로 삭인 구심(求心),

아픔을 옥죈 옹이보다 단단했다

서걱거리던 풍상을 가슴속에 채우고 한해살이 모퉁이에 돌아눕는

금빛 해탈은 땀방울이 기다린 화답이었다

 

장모님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행성, 장모님 손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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