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김덕진
접시는 음식을 비우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얼룩진 달이 층층이 쌓여 탑이 되었다
저 높은 탑을 온종일 허물어야하는, 고무장갑 낀 손은
메뚜기 떼가 훑고 지나간 먼 이국의 경작지를 기억할지 모른다
내일아침 눈을 뜨면 물속에 잠긴 달을 헹궈
메뚜기 떼의 흔적을 말끔히 지운 손가락이 부식된 꿈의 잔해에 눌려
관절이 부을지도 모른다
결혼 피로연장안으로 떼를 지어 들어온 사람들의 손에서
궤도를 이탈하지 않은 하얀 달이 연신 떠올랐다
달의 깊이를 메운 색깔은 서로 달랐으나
하루의 평형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은 누구나 똑 같았다
국적이 다른 빛깔의 향내에 낀, 수많은 사람들의 눈은 더듬이가 되어
정오의 칼로리를 건저 올리기 시작했다
나팔꽃 덩굴처럼 얽힌 사람들이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달에 얹힌 색깔을 지우며 오래전에 소멸된 이야기의 질량을 재거나
고개를 뒤로 젖혀 잔을 비우고 눈 속에 단풍잎을 띄었다
그들은 한낮의 정수리에서 사방이 막힌 벽에 창문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쉴 틈 없이 수거된 얼룩진 달,
누군가 물로 허물어야 하는 하얀 탑이 되었다
뷔페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세상을 설거지하고 있었다
이번 주말에는 검은 먼지 두껍게 쌓인 내 영혼을 설거지해야 겠다
고해성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