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저녁을 필사하다/김덕진
1.
아무도 붉은 혀를 원망하지 않았다
여름 문지방위에 엎질러진 무더위는 저녁이 되어도 마르지 않는다
그림자가 물구나무서는 진공관속 같은 골목에서 아날로그색깔을 입은 바람이
등뼈의 현을 울린다
흙속의 어둠을 사랑했던 지렁이의 부르튼 입술,
허공의 빛을 빨고 강렬한 죽음을 삼키기 위해
뜨거운 빛의 분자를 흡수한 콘크리트 길 위에서 녹슨 못처럼 몸을 말고 누웠다
입속에 채집된 붉은 혀의 외로움을 말리고 있는 중이다
모래알만한 흙을 물고 온 작은 개미들이 미라 된 지렁이의 사체위에
예물로 올리고 줄지어 조문한다
하늘에 걸린, 사춘기지난 조등이 문상객을 안내한다
2.
서산을 갉아 먹은 해는 오늘도 머리감으러 갔다
아직 하루를 다 청산하지 못한 매미들의 조바심,
얇게 먹지 발린 골목에 망설임 없는 폭설처럼 음계를 뿌리고 아무도 찾지 않는
검은 거울 속에서 종말까지의 시간을 썰고 있다
다시 죽을 수 없는 죽음이기에 죽음의 회오리를 삼키는 것은
축복이며 위대한 선물이다
어둠의 벼랑을 건너기 시작한 이웃집 텃밭, 압력밥솥이 되어
가을무늬를 먹은 풀벌레의 목소리를 삶는 중이다
얇은 어둠을 걷으며 골목침상으로 하나둘 모이는 부채에
호박죽 닮은 이야기가 흥건하다
하늘에서 노숙하는 별, 천문도에서 본적 있는 별들도 더워 연신 자리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