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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은 스승이다

김덕진요셉 2018. 12. 21. 05:24

쓰레기통은 스승이다/김덕진

 

어젯밤 어둠의 벼랑에 파종했던 덜 영근 잠을 아침 일찍 베었다 흘림체로 번진 여명의 빛줄기가 이마를 적시고 흘러내린다 또 말씀을 주으러 갈 시간이다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두 개의 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바람의 나라에서도 세운 적이 없는 야누스의 문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컴컴한 내장에서 점화된 불로 나의 언어가 화약처럼 폭발하지 않도록 스스로 주문을 걸고 자존심의 싹을 잘랐다 내 안에 다른 내가 자라지 못하도록 천사가 흘린 옷을 단단히 움켜쥐고 바람이 끌고 가는 대로 야누스의 문으로 갔다 그곳에는 원룸 입주자들이 내다버린 말씀들이 쓰레기통을 가득 메우고 짙은 침묵의 음영을 흘리고 있었다 천사와 악마가 내 안에서 또 다투기 시작한다 그들의 다툼은 몸속의 수분을 태우는 것처럼 몹시 괴로운 일이나 그들도 내 몸의 일부다 오늘은 내 언어에 불을 붙이지 않고 말씀을 모두 거둬들였다

 

비운만큼 채울 수 있으나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도 더해진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참으로 먼 길을

돌고 돌아서왔다

비로소 하늘로 향한 말문이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