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가린 내일은 축복이다/김덕진
어제가 복원될 수 있는 날이라면
나는 내일의 끈을 잡지 않는다
모든 이가 각기 다른 색깔로 진하게 밑줄 친 시간은
셀 수없이 많은 문장을 담은 어제로 남고
다가올 내일은
한치 앞을 만져 볼 수 없는 암흑속이라 너무 신비롭고 다행스럽다
죽음너머의 시간을 빌려서
붉은 벽돌 속에 갇힌 나를 수술하던 때를
나는 희미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손에 성수를 들고 성인의 이름을 부르며
내 이마를 씻던 그의 목소리는
지상과 하늘을 잇는 교량이 되어주었고 지금은 그의 비문 옆에 누웠다
처음이며 끝인 숨결을 몸에 두르고 붉은 벽돌 속에서 나왔을 때
욕망이 빠져나간 내 얼굴에서 열매가 자랐다
언제부턴가 또 다시 세상으로 기운 내가 낯을 가리기 시작했다
만져지지 않는 뒷모습을 몰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삭제할 수 없는
거울 속 공간의 중심을 지난 불편한 시간의 울렁거림이
두루마리에 적힌 문장처럼 펼쳐진다
흔들리는 몸을 내일에 기댄다
내일을 베일로 철저히 가려놓은 것은 분명 신이 주신 최고의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