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진요셉 2020. 2. 19. 13:01

/김덕진

 

겨울을 건너는 동안 볕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얼굴에 찬별 뜬 사람들이 드나드는 다세대건물의 현관문으로

어름 박힌 바람의 혀도 들락거린다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우측으로 다섯 발자국 옮기면 닿는 곳,

커다란 스티로폼상자에 대파를 심어

아침나절 햇살이 한때 배회하는 1층 계단 옆에 가위와 함께 놓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모이는 스튜디오 세입자들이

내 몸을 통과한 문장을 읽고 파를 잘라갈 수 있도록

안내문도 붙여놓았다

 

파의 그림자가 자라는 차가운 윗목은 바구니에 든 뜨락이다

차가게 튕겨져 나간 발자국소리를 퍼 담은 뜨락에서 매일 도마질이

조금씩 자라는 소리를 눈으로 듣는다

고통위에 세워진 고대 신전의 기둥처럼 솟은 파,

거룩한 욕망으로 허기진다

가위로 밑동이 싹둑 잘리는 날

상형문자 같은 나이테 위에 또 다른 나이테를 품고 시간의 채무를 변제하듯

새 살을 세운다

여린 밤의 갈피를 넘기며 내 마음을 딛고 오는 발자국소리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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