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김덕진요셉 2020. 8. 6. 21:17

거울/김덕진

 

누구의 전유물로 남고 싶지 않은 나는

하늘과 바다가 포옹하는 아득한 설렘같이

내 등과 하나가 될,

수직으로 선 벽을 사랑했다

슬픔에 취약한 벽이 소리 없이 무너질 때도 사람들은 젖은 눈으로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나에게 오는 이들은 자신의 안부를 묻기 위해

스스로 길을 내고 왔다

내 안에서 잠시 정물이 되기 위해 멈춘 그들의 시간을

편집 없이 재생하여 돌려주었다

말도 안 되는 사랑을 담은 눈, 분노를 끄집어낸 표정,

슬픔과 고통의 그늘을 늘어트린 얼굴,

어딘가 조금은 아프게 보이지만

아직은 이 모든 것들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표징처럼 보였다

 

나는 내 앞에 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눈동자를 보고 전한다

 

삶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생각한대로 세상이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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