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과 새/김덕진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자동차타이어의 마찰음이
해변에서 끊임없이 투정부리는 파도소리를 닮았다
6층 허공에 매달린 내 방엔 언제나 출렁이는 파도소리로 꽉 들어차
내 안에 퇴적된 해안선을 씻는다
고행을 즐기는 순례자가 목소리를 꺼내지 않는 것처럼
새의 목소리에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옥탑방의 낮은 지붕위에서 설형문자를 새기는 새발자국 소리에
울음을 엎지른 소리가 들어있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나의 방 지붕위에서
검은 건반을 두드리기 위해 새들이 날개 접는 소리는
내가 주워 먹어야 할 배고픈 언어로 다가왔다
곧 다가올 강한 태풍의 회오리바람을
떠먹여 주는 대로 삼켜야 된다는 사실을 제일먼저 안 것은 새들이었다
지붕위에 설치된 위성안테나의 주위를 돌며 우주에서 보낸 신호를
연신 알약처럼 삼킨다
너무 긴 세상이야기 틈새로 울먹이는 바람의 어깨가 끼어들고 있다
내 정수리위로 생의 회귀선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