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진공일 때/김덕진
허공에 매달린 채 안테나를 세운 6층 옥탑 방,
진공을 낳는 문장을 모으는 무중력 방에서
물구나무선 그림자가 가장 나다운 나를 읽는다
그림자에 숨어있던 얼굴을 꺼내기까지 바람의 잔상은 오랜 기간
공명처럼 흔들렸다
나는 내 그림자 밖으로 나가지 않고
돛단배처럼 표류하는 언어의 궤적에 바람 묻은 풍경을 입혔다
무중력 방안으로 빨려드는 지상의 목소리들,
물에서 멱 감는 해처럼 활자체로 빛났다
굳은살 박인 바람의 거친 이력이 날마다 귓속에서 조금씩 자랐다
오래전에 내가 수혈 받았던,
윤곽 흩어진 달무리를 허물고 진공속의 고요로
나에게 온 바람이었다
내 마음이 진공일 때 하늘은 가장 낮게 다가왔다
내 안에 품은 나이테의 개수가 늘면서부터
혼잣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가끔 거울 속 내 얼굴에서 구름을 밟고 서 계시는 아버지의 주름이 보였다
구부러진 바람을 펴려고 한쪽 끝을 잡고 중얼거릴 때
누구와 대화하냐고 아내가 물었다
난 못들은 척, 속으로 내 아버지를 닮아가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태양의 눈물을 가르쳐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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