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진요셉 2022. 8. 24. 19:18

/김덕진

 

봄이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세상을 향해 목젖이 보이도록 환한 웃음을 터트리려는

꽃망울의 몸살을 숨길 수 없지만

나에게는 절대로 남들한테 들키지 않는 것 한 가지가 있다

당신한테 허락을 받지 않고 어쩌다가 당신 꿈을 꾸어도

아무도 눈치 채는 이가 없다는 사실,

이상한 집을 허문 우리의 꿈속 대화는 자주 어긋났지만 필름에 감긴 당신은

내 몸 밖으로 출력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기울어진 꿈을 넘는 당신의 차가운 등이

내 마음을 닫아 주었을 때

나는 내 이름을 꺾고 손바닥에 담을 수 있는 것만 생각했다

당신의 뒤엉킨 뇌는 내가 가까이할 수 없는 혼돈의 질서를 무수히 나열하고

내가 은신할 퇴로를 차단했다

이따금 활자냄새를 몸에 바르고

책속에서 걸어 나온 당신의 눈동자에 뜨거운 해일이 일어났음을

내 손에 쥔 그림자가 먼저 알아차렸다

가슴을 닫은 당신의 얼굴은 오직 나에게만 난반사되었다

내가 당신 손을 잡는 순간 당신 손이 모래알처럼 내 손가락사이로 흘러내렸다

가공되지 않은 채로 가둔 당신의 세상이 흘러내렸다

누군가를 깨울 각진 새벽이 자막도 없이 서서오고 있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봄날의 서사  (0) 2022.09.09
인연의 흔적이 가라앉다  (0) 2022.09.02
현수막  (0) 2022.08.17
계단 밑 창고에는  (0) 2022.08.12
벼꽃을 작곡하다  (0) 2022.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