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은 기억할까/김덕진
60년대 중반 통어묵 같은 인분을 짐칸에 싣고
도로를 오가는 트럭을 용산역 앞에서 보는 것,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당시 서울의 겨울은 현학적인 수사가 잘 어울리는 차가운 기후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의정부에 사시는 고모님 댁을 방문하기 위해
용산역 플랫폼에서 왕십리행 기차를 기다렸다
이따금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새까만 증기기관차에서
새하얀 수증기를 내뿜는 용산역의 아침이
동상 걸린 겨울역의 여백을 완벽한 흑백구도로 당당하게 채색하였다
어느 순간 아침을 가공하는 발자국소리가 분주해지고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혀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출발하는 기차에 오르던 검정 교복을 입은 한 중학생 형이 계단을 밟지 못하고
기차 손잡이에 매달려 끌려가는 모습에 모두 혀만 키우고 있었다
생의 궤도에서 이탈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
단 몇 초의 사투에서 누군가 그의 손을 잡고 기차 안으로 끌어올렸다
부서질 번한 그 중학생 형의 틀이 그날 보호되었다
아직도 눌러지지 않은 내 유년의 아찔한 기억,
하나의 삽화가 된 내 생의 페이지를 때로는 눅눅한 바람이 들춰놓고 간다
전철을 타고 용산역을 지나칠 때면
그때의 중학생 형이
은하철도의 궤도로 환승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