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의 등대

김덕진요셉 2011. 2. 26. 09:08

                             옥탑방의 등대

 

                                                 김덕진

 

 

땅거미의 소용돌이에 빠진 노을이

마지막 회색먼지를 입자

온 종일 녹슨 굉음을 쏟으며

차가운 인적의 탯줄을 자르던 집게발이

하루의 관절을 접었다

검은 도화지가 펼쳐진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빈 내장을 드러낸 집의 횡 한 창틀에

구겨진 회색의 시간이

젖은 빨래처럼 무겁게 매달렸다

부서진 창문너머

누군가의 꿈이 뿌리 채 뽑힌 구덩이에

여물지 않은 수군거림이 채워지고

붉은 점 몇 개가 어둠을 구멍 내며 키득거린다

멍석처럼 말려있던 정적이 깔렸다

아직 뿌리가 뽑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누군가 언덕배기 옥탑방에

하얀 등대를 세우고 불을 끌어당긴다

가로등 불 빛 조차 쫓겨난 철거지역의 어둠은

한줄기 빛의 긴 목마름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등대에서 게워낸

빛을 빨며 어둠을 뚫는다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등대의 불빛은 매일 밤

꺼지지 않는 철거민의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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