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의 등대
김덕진
땅거미의 소용돌이에 빠진 노을이
마지막 회색먼지를 입자
온 종일 녹슨 굉음을 쏟으며
차가운 인적의 탯줄을 자르던 집게발이
하루의 관절을 접었다
검은 도화지가 펼쳐진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빈 내장을 드러낸 집의 횡 한 창틀에
구겨진 회색의 시간이
젖은 빨래처럼 무겁게 매달렸다
부서진 창문너머
누군가의 꿈이 뿌리 채 뽑힌 구덩이에
여물지 않은 수군거림이 채워지고
붉은 점 몇 개가 어둠을 구멍 내며 키득거린다
멍석처럼 말려있던 정적이 깔렸다
아직 뿌리가 뽑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누군가 언덕배기 옥탑방에
하얀 등대를 세우고 불을 끌어당긴다
가로등 불 빛 조차 쫓겨난 철거지역의 어둠은
한줄기 빛의 긴 목마름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등대에서 게워낸
빛을 빨며 어둠을 뚫는다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등대의 불빛은 매일 밤
꺼지지 않는 철거민의 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