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만의 회귀
김덕진
낮에 뜬 달이 나를 불렀다
깨어나지 못한 고요한 울림으로 파동 치는 소리가
달에서 들려오면 언젠가 찾아야 할
과거의 통로에 있는 그곳이 꼭 갚아야 할 빚으로 남아
옹달샘처럼 고였다
햇볕에 널어도 마르지 않았고 비를 맞아도
헤지지 않았던 그 기억은
순수의 자양분으로 긴 시간 응축되어있었다
달에 물이 차올랐다
달에서 출렁이는 소리가 마침내 나를 반세기만에
어느 야산중턱에 올려놓고
마르지 않은 기억의 실타래를 천천히 끌어당겼다
잡목이 무성한 비탈진 산의 조그만 평지
논과 논둑의 경계가 지워진 곳에서 기억을 만지작거리며
그 옛날 수렁에 빠뜨린 동심을 찾다가
내가 놀다 빠졌던 물 고인 수렁에 해가 들어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오랜 세월 비워둔 집의 먼지 쌓인 문지방을 넘어
앞마당에 들어선 것처럼 나의 눈은
잡목의 낙엽으로 뒤덮인 논을 구석구석 핥았다
조그만 웅덩이 주위에 쌓아 놓은 돌들은
어슷하게 틀어지고 벌어진 틈 사이는 구멍 난 세월로
메워져있었다
달의 출렁임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체온이 스며든 외로운 돌의 항변이
달 뒤편을 흔든 울림이었다
산새들의 지저귐이 작은 도랑을 흐르는 물처럼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