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먹을 시간이다/김덕진
마시다가 남긴 찻잔 속의 태양이 말라간다
낙엽을 굴리는 바람의 낱장들이 늦가을의 속지를 넘긴다
허공을 문질렀던 나뭇가지의 아픈 무게를
새들도 잘 알고 있었기에
환지통을 앓는 나무에는 새들이 꿈을 얹지 않는다
아직 털어내지 못한 잎사귀의 진동자 같은 떨림이
마치 서로 다른 내면에 그어진
결이 다른 감정선의 진폭 같다
솎아내지 못한 바람의 잔가지들이 지구본을 돌리면 등에 낸 창문이 덜컹인다
등뼈에 고정한 경첩이 느슨하게 늘어져
무거운 납빛을 굴절시킨다
아무래도 너무 많은 것들을 오랫동안 가둬놓고
죽음의 역방향을 고민했던 모양이다
아직은 그림자를 가질 수 있다는 안도에 각을 세운 바람을 갈고
비뚤어진 이름을 바로 세운다
이제는 손바닥에서 빠져나가는 울음소리를 지을 수 있을 것처럼
휘어진 등뼈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어디서 칼등으로 왕소금 같은 물고기의 은빛비늘 긁는 소리가 부풀어 오른다
또 약 먹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