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 게시판/김덕진
정오의 햇살이 게시판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내의 푸석한 그림자를 짧게
걷어말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구인 광고물을 더듬는
시선마저 남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그 때마다 광고물의 글씨는
벼랑 끝에 수직으로 서있는 얼음 박힌 바람이 되어
그를 애벌레로 가두어 놓았다
게시판에 박혔던 그의 시선은
절망의 부스러기들이 수북이 쌓인 시멘트바닥으로
미끄러져 곤두박질쳤다
두꺼운 책갈피 속에 납작하게 깔린
하루살이의 마른 사체처럼 그의 꿈에서 수분이
빠져나는 순간이었다
작은 벌집에서 또 다른 벌집으로만 이어졌던
숨 막히는 유충생활
날개 돋은 성충이 되어 날고 싶었으나
그의 꿈에 고여 있던 핏기는 오래전에
가신 것 같았다
빗나간 과녁으로 모여든 주름살에 울먹이던 바람이
파고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