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담은 잔/김덕진
태기산 계곡에서 송충이의 양식을
빼앗아 왔다
술에 지친 간 건강에 솔잎이 좋다기에
키 작은 소나무가 입은 옷을 홀랑 벗겨 알몸을
만들어 놓았다
꽤 오랜 기간 빼앗아 온 양식을
요구르트와 섞어서 갈아 마셨다
깊은 산을 마실 때 마다
솔잎 갉아 먹는 소리가 섞인 숲의 향기가
혈관을 타고 온몸에 흘렀다
언제부턴가 분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고
소나무가 울창한 산을 담았던 잔도
내게서 멀리 떠나갔다
술을 마시기 위해 산을 마신다고
생각을 한 모양인지
나날이 쌓여만 가는 빈소주병이 아내를 뿔나게
만들었나 보다
미라가 된 태기산이 냉동실에 누워있다
오늘도 분쇄기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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