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제 지내던 날

김덕진요셉 2011. 11. 8. 15:14

                      산제 지내던 날/김덕진


음력 구월 그믐 아침나절

올해도 여느 해처럼 사람들과 함께 살진 소 두 마리가

옅은 구름을 담고 있는 산골짜기로 들어가

윤곽이 흩어진 발자국을 남겼다

그들에게 익숙한 냄새는 논밭인데 누런 솔잎이 깔린

산속으로 왜 들어가야 했는지

콧바람 속에서 튕겨 나온 불안한 물음표가 소의 커다란 습지에

연잎처럼 떠있었다

어느 순간 둔탁한 소리가 산허리를 찌르자

겁에 질렸던 큰 습지가 천천히 매몰되었다


순진한 붉음이 길을 낼 때

구름은 제물의 향이 되어 소나무사이를 굴러다녔다


한 마을의 산제는 그들을 철저하게 빈 몸으로 만들고

질긴 전통의 힘줄을 가을끄트머리에 걸어 놓았다

피 냄새가 묻은 비릿한 바람이

제물 한 덩어리씩 불하받기위해 모인

마을사람들 머리위로 엎질러졌다

어둠에 기대어 오줌 누는 사람, 취기로 눈에 단풍을 담은 사람,

추위에 고양이처럼 몸을 말고 앉은 사람 모두,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제물의 울음소리를 하나씩 들고

달빛을 걷으며 사라졌다


핏물 든 성찬의 밤이 달빛에 씻기고 있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아리 속에 뜬 달  (0) 2011.11.16
새벽이 없는 자장가  (0) 2011.11.13
이삿짐을 따라간 꿈  (0) 2011.11.02
잔을 담은 산  (0) 2011.10.27
아버지가 데려온 별  (0) 201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