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집터에 가면/김덕진
이곳을 지나 갈 때에는
내 발바닥 혈관에
아날로그 시절의 기억이 용해된 자성이 흘러
발이 땅바닥에 달라붙는다
빛바랜 신문지에 돌돌말린
연장 같은 몸속으로
책갈피에 끼워 놓은 마른 나뭇잎색깔의 영상들이
섬이 되어 들어온다
지워지지 않은 섬의 뿌리마다 심연에서
길어 올린 맥박이 출렁이고
돌릴 수 없는 세월의 뱃머리로 젖은 바람이
몰려들어 쌓인다
빗물 스민 저녁의 상처보다
더 아린 흔적이 묻힌 이곳은
아버지가 노을로 마당 쓰는 소리를 잠결에 듣던 곳
어머니가 장독대에서 뚜껑을 닫을 때
항아리뚜껑 끌리는 소리를 흘렸던 곳
마지막 포옹과 같은 둥지의 터가
오래전 모 대학캠퍼스의 한쪽 귀퉁이에 밟혔지만
아직도 내 눈 속에서 섬으로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