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소묘/김덕진
모든 창문이 눈을 감았다 아스팔트위에서 환청이 바스락거린다 고통을 잊은 최후의 선고, 경계 없는 중립의 언어가 일어선다 몸살 난 바람이 밀고 다니는 소리, 그 소리의 테두리에서 뫼비우스의 띠가 부풀어 오른다 마르지 않은 밤의 눈동자를 저격하고 안개 같은 몽환의 영역에서 정지된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허한 속만 남은 자본주의 상표의 살 거죽, 한 번도 덧칠한 흔적 없는 촘촘한 밤의 밀도를 부식시키며 아스팔트를 끌어안고 보이지 않는 난맥의 탈출구를 찾는다. 살 거죽에 붙어 있던 필기체의 외국문자들이 현학적인 제 그림자의 윤곽을 허물고 한쪽 구석이 함몰된 몸속에 섬처럼 떨고 있는 밤을 구겨 넣는다 이따금씩 아스팔트와 포옹하는 소리가 오래된 책의 제목처럼 일어선다 재생을 꿈꾸며 세상과 이별을 고하는 낙관 찍는 소리였다 아르테미스, 달의 정수리를 쓰다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