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쿨렐레와 여인

김덕진요셉 2018. 11. 22. 21:05

우쿨렐레와 여인/김덕진

 

그녀는 청동거울 속으로 날아가 얼굴에 분을 바르던 귀족이었다

세미라미스의 공중정원에서 천사들의 나팔소리에 맞춰 수금을 타거나

이따금씩 대팻날에 말린 조각 같은 달에 앉아

빛과 어둠의 대립으로 상처 입은 지구의 슬픈 눈동자를 위로하며

우쿨렐레의 현을 울렸다

사막의 깊은 밤하늘을 담은 눈으로 지느러미에서 떨어지는

심해어들의 언어를 판독하고 하늘에 박힌 별자리의 난수표를 해독하여

산사태 난 가슴을 어루만져 주어야 할 한 뭉치의 경전을 완성했다

낮과 밤이 충돌하는 소리를 들으며 보리이삭을 줍던 얼굴들, 비탈진 시간을

모두 빼앗기고 그림자가 밟혀도

미동의 저항도 할 수 없는 일기장속 낙서 같은 미로의 얼굴을 찾아

그녀는 달에서 경전을 가지고 달팽이의 보폭으로 내려왔다

달팽이의 보폭이 아름다운 것은 하룻밤에 별과 별사이를 오가며

지구보다 무거운 생각의 지문을 낙관처럼 찍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매에서 줄줄 흘러내린 옹달샘 같은 우쿨렐레의 멜로디를

요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꿀꺽 꿀꺽 달게 삼켰다

그들의 삶이 요약된 문장이 창백한 별이 되어 그들의 이마에 떴다

지난날 바람 속에 지은 집에서 바람의 뼈에 찔린 많은 상처의 흔적을 담을

자서전을 남기기에는 너무 많은 지우개가 뇌 속을 문질렀다

그들은 연신 색깔 없는 말을 풀어 고치를 만들고 자신을 고치 속으로

가라앉히는 중이었다

 

오늘도 그녀는 우쿨렐레의 음색을 손목에 감고 갈잎으로 물든,

외진 가슴을 찾아 하얀 길을 내고 있다

그것이 그들에게 골고루 발라줄 경전이었음을 그녀는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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