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진화중이다/김덕진
반지하방은 진화의 꿈을 싣기 위한
간이역의 플랫폼이다
언제나 소리를 부풀리는 것은 이른 아침,
뒤섞인 발자국 소리들이 커튼사이에서 제일 먼저 방안으로 떨어진다
햇살 굶주린 공복으로 서있는 벽에서 검은 꽃이 피는 곳
낮이 솟아오르면 반근짜리 태양이 뜬다
밤의 볼모로 머물렀던 햇살도 좁은 계단을 내려올 때는 고개 숙인다
어제보다 조금 더 자라난 햇살의 호흡을 몸에 바르고
명치끝에서 수시로 자라는 한숨을 자른다
검은 구름에서 가락국수를 뽑는 날은
지나온 흔적을 스스로 지우는 어항 속 물고기가 되어 삼키기 싫었던 과거를
아무도 먼저 꺼내지 않는다
물의 바닥을 아는 이들에게 물 밖의 시간은 목숨보다 위에 있기에
하루에도 셀 수없이 많이 자맥질하는,
색깔이 다른 물음표를 일부러 들이키지 않는다
제자리를 찾아가지만 어제를 읽지 않는다
행인들이 쏟은 축축한 시선의 무게가
뼈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방 창문으로 번진다
내가 거리를 오가며 걸을 수 있는 것은 반지하방 사람들이
그들의 어깨로 떠받쳐주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간이역에 모인 사람들이 별의 눈물을 굽기 위해 땔감을 찾는 중이다
가슴속에 가라앉힌 빛을 배양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