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의 안쪽은 그대로다

김덕진요셉 2019. 12. 24. 11:28

해마의 안쪽은 그대로다/김덕진

 

그때 어머니의 하얀 앞치마는 내 놀이터였다

 

자동차 휘발유 연소냄새를 일부러 맡기 위해

자성을 띤 돌멩이처럼 자동차 꽁무니를 따라다닌 적 있다

발동기에서 통통 뿜는 도넛의 향기가 너무 좋아 진한 목마름처럼 마시러

먼지 앉은 거미줄이 늘어진 동네 방앗간으로 간 적도 있다

휘발될 수 없는 유년의 짧은 외출, 심상을 파고드는 설렘은

언제나 한쪽 방향으로만 고였다

유년의 지평선에 잔설처럼 쌓여있는 옛 방앗간의 노을 묻은 뒷모습이

나의 동공을 헹구었다

오래전에 사라진 입술, 그때 방앗간 집 아저씨의 한쪽 팔은

끊어진 온기로 마음 저릿한 의수(義手)였다

한 무더기 쏘아올린 하얀 비명은 그의 왼쪽 바닷물을 말렸다

발동기의 풀리에 감긴 피댓줄에 끼어

허공을 찢었던 고함소리의 끝을 내 눈에 담았던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오래전에 수평의 체위로 전환되었지만

내 눈이 마지막으로 포옹했던 그의 마른 바다는 또 다른 그의 하늘을 쥐고 있다

금이 간 거울 속을 분주히 걷는 발자국소리들이 뒤엉킨다

이가 어긋난 시간의 항변을 듣다가 파랗게 질린 채 비탈길을 기어오르는

담쟁이의 캄캄한 바다를 들여다본다

 

내가 매달려 놀았던 어머니의 앞치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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