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끄다/김덕진
그의 강물은 항상 역류했다
깊은 잠에 묻혀야만 비로소 사람다웠던 그가,
시계도는 방향에 저항만 하던 그가
빗장을 잠그고 그의 그림자를 떠서 침묵이 자라는 방으로 갔다
한 뼘의 신뢰도 남기지 않고
배신만 떠먹이고 돌아선 연대보증의 족쇄는
매일 술병 서너 개씩 쓰러트려야
그의 쓰라린 마음속 상처를 소독할 수 있었다
한때 그의 재능을 빌려 썼던 어느 공기업도 엎질러진 기대치를 읽고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삼킨 벼랑 끝 허구의 시간을 그는 맨 정신으로
소화시킬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낮아지는 생의 음계, 그럴수록 더욱 많은 행성을
그의 가슴속으로 끌어들이고 감각을 마비시켰다
출구 없는 수직의 목소리는 점점 기울었다
수화기너머에서 손을 내밀었던 그의 균열 난 목소리에
성에가 묻어있었다
궤적을 이탈한 그의 시간이 심하게 흔들렸다
몸에서 떨어진 가랑잎 두 장을 남기고
그는 스스로 몸에서 꺼낸 이름을 침묵이 웅성거리는 허공에 매달았다
그의 시간이 꺼졌다
마침내 그의 이름에서 날개가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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