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그 화려한 선동/김덕진
창밖의 오랜 기다림이 폭발했다
지상을 향해 하늘의 감각이 눈을 돌린 날
누구에게도 읽혀지지 않은 망설임 섞인 수억만 통의 엽서가
무채색 그림으로 내려온다
수취인이 없어도 반송되지 않는 알몸의 언어,
궁서체로 내려오는 하얀 글씨들이 눈부시도록 흰 배냇저고리를 짓는다
배냇저고리를 입은 세상
이 순간만큼은 나의 내부를 가로질렀던 강물이 정화되고
나는 내 이름의 흔적을 잃어버린다
흑백 속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
위선의 목마름이 없기 때문이다
눈부신 점자의 암호를 해독하는 이들의 가슴에서 열매가 자란다
산사태 난 가슴도 현학적인 지명위에서
지난겨울의 뒷모습을 회상하며 그의 발자국에서 떠오르는 별빛을 본다
눈으로 삼킨, 활동사진 같은 눈 비늘 속에서 혀들이 분주하다
빗장 풀린 문장으로 세상이 포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