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나에게 남긴 것은

김덕진요셉 2020. 9. 17. 16:31

여름이 나에게 남긴 것은/김덕진

 

유별났던 여름이 보따리를 싸는 중이다

피 흘리는 여름의 속편에 역대 급 기록을 세워놓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강자의 뒷모습으로

여름이 떠날 차비를 한다

긴 시간 물에 불은 하늘에 금이 가고 산은 허물이 벗겨졌다

땅을 겁탈한 바다의 잔인한 포옹으로 파도의 지문이 묻은,

깊은 상처에 탄식의 마개가 닫히지 않는다

오랫동안 인내하며 기다려야 치유될지도 모를

잔혹한 사랑을 연주한 것이다

양심이 퇴화된 손으로 뒤엎은 바닷물,

당연히 받아야할 고통스런 분노의 사랑이 밀물되어 왔다

감각이 둔한 손바닥에서 투박하게 쏟아낸 혼돈의 악보대로 자연은

쓴 사랑을 연주해 줬을 뿐이다

 

어둠의 벼랑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을 헹군다

여름과 작별을 연습하는 풀벌레들의 합창이 밥솥처럼 끓는다

숙제보다 어려웠던 여름,

나에게 와서 그림자의 언어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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