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단테/김덕진
시간을 앞서는 것은
아득히 높은 절벽을 쌓고 스스로 섬이 되어가는
고독한 길을 걷는 일,
시간의 균형이 무너진 이름위에서는
사랑이 수리되거나 보수되기 어렵다
서두르지 않는 생의 기척을 위하여
고장 난 내 손목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딱딱한 시간을 안내하고
내 마음속 어둠의 농도를 잰다
아직은 때가 아닌데
수천 개의 입술이 꽃나무에서 뛰어내릴 때,
절기를 잃어버린 꽃나무가 울먹이며 꽃망울을 터트릴 때
서글픈 냄새가 내 몸을 관통한다
사랑으로 제 살을 깎는 달은 새살이 차오르는 동안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몸에서 심지를 뽑아 불을 켠다
소발자국 닮은 호박넝쿨에서 워낭소리를 듣는다
호박넝쿨이 시간의 고삐를 거부하고 천천히 제 그림자를 늘리는 것은
생각이 깊어서 그렇다
내 도시가 치조골이 무너진 치아처럼 흔들린다
시간의 주인은 나,
안단테의 걸음으로 태양을 한입 깨문 이슬방울의 내면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