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봄 한 포기

김덕진요셉 2021. 4. 22. 16:52

또 하나의 봄 한포기/김덕진

 

봄을 입은 여인들의 입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아직도 내 몸의 절반이 잔설 덮인 골목의 응달이지만

빗장을 연 봄의 색채는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간다

겨울을 건너는 동안 참았던 나무의 속울음이 끝내 종기가 되어

열꽃처럼 돋았다

남모르게 숨어서 가려움증을 앓던 나뭇가지의 부스럼이 덧나

태양이 밟고 갈 녹색그늘을 짜는 중이다

봄은 매번 똑같은 무게로 오는데

마음이 기우는 곳이 많기 때문에

내가 포용할 수 있는 봄의 무게는 해마다 조금씩 힘겨워진다

맨 처음 이 봄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이 지나고 난 뒤에

또 하나의 봄을 채록하는 땅의 일기를 몰래 읽는다

 

차가운 응달을 품은 가슴을 깨우고

가장 늦게 내 몸에서 싹튼 봄 한포기, 내게 환한 울음을 가르친다

들리지 않았던 돌의 울음소리 이제 듣는다

남의 상처가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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