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序詩)/김덕진
내 몸의 절반은 아직도
잔설이 군데군데 머뭇거리는 겨울을 건너지 못했다
마지막 포옹 같은 쓸쓸한 무게가
노을에 젖어 울먹이는 마음속 문풍지를 흔들었다
이따금씩 목에서 올라오는 쇳소리에
퍼렇게 멍든 빙하의 그늘이 딸려 나올 때
프라하의 젖은 지도에 놓고 온, 진눈개비 묻은 내 발자국을 생각했다
카를교의 돌다리,
석상처럼 무거운 발자국의 침묵이 젖은 지도위에 번졌다
그날 내가 황금소로에서 쏜 화살은
슬픈 과녁을 향해 날아가지 않았다
카를교의 석상을 고독하게 적시던 진눈개비를 떠올리며
내가 나를 정독한 순간
나는 일부러 아픔이 묻은 중세의 과녁을 피해 당겼던 활시위를 놓았다
허공을 비비며 방향을 꺾는 소리,
젖은 꿈을 산란하던 검은 달은 피를 흘리지 않았다
기침이 몸에 금을 그을 때마다 야윈 등이 가렵다
겨울을 건너지 못한 몸속에서 봄 한포기 움트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