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스케치하다

김덕진요셉 2022. 7. 14. 04:45

람을 스케치하다/김덕진

 

종일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붕물받이 홈통을 타고 떨어지는 빗방울의 운율이

귀속에 작은 도랑을 냈다

모래바람 부는 가슴을 적신 빗소리의 엇박자,

하늘을 닮은 무반주 변주곡을

내 소유물인 것처럼 붉은 목젖 안으로 밀어 넣었다

때때로 엇박자가 아름다운 것은

잊고 살았던 리듬의 공명을 엇박자 속에서 꺼낼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체리나뭇가지에 팽팽하게 휘감긴 바람이 일어서자

나뭇가지들이 바람의 현을 켰다

바람에 기대어 몸을 흔들며 연주한 곡은

마치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위로곡 같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었다

오늘 내 안의 어둠을 지울 호롱불이었다

바람과 나뭇가지가 조율한 곡조의 폭과 깊이를 젖은 하늘에 스케치하였다

찬비를 피해 새들이 다녀간 가지위의 발자국엔 아직도 새들의 꿈이 남아있을까

제목을 감추고 있는 것들,

바람 뒤에 숨은 것들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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