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손/김덕진
비가 오는 날에는 생각이 한쪽으로 쏠린다
내 손으로 만져주어야만
오랫동안 방치한 상처가 나을 수 있는 곳이지만 선뜻 손을 대지 못했다
녹슨 시간이 벌려 놓은 콘크리트 크레바스 속으로
끊어진 비의 현들이 셀 수없이 침몰하는 색채를 바라만 보았다
해진 꿈을 숱하게 깁다가 보니
틈을 엿 들어야 할 시간을 자주 잊어버렸다
누군가 날마다 내 서쪽노을을 써레질 해놓는 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만들어지는 순간에도 노을은 새벽지문이 다 닳도록 나를 끌어안았던 것이다
쉰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틈새를 메우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적막한 도구였던 흙손이 필요했다
부서진 노을을 담고 있는 연장통을 열었을 때 그곳에 아버지의 그림자가
부식된 시간을 베고 누워있었다
나의 두 눈은 누런 보리밭에 지진처럼 일렁이는 아버지의 황색 바람을 보았다
끈끈한 빗소리로 울고 있었다
나는 진한 갈증으로 아버지의 그림자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