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소리/김덕진
식탁에서 가족이 함께 빚는 소리,
누군가에게는 손톱 밑의 가시 같은 소음이 되어
신경을 자극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밥그릇에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노스텔지어의 파편들이 고요히 떠 있는 쇼팽의 녹턴보다 더 아름답고
깊은 음으로 마음에 도랑을 냈다
내가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동안에는
가족끼리 식탁에서 빚는 소리가
이토록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붉은 몸살을 사나흘 앓아 누웠을 때
나는 유충처럼 이불을 말고
식탁에서 흘러내린 소리에 여러 그림을 입혔다
식탁의 그림에서 나는 지워졌지만
내가 고개를 숙여야 하는 소리를 찾았다
밤을 몇 끼 먹지 않았더니 오히려 내가 더 멀쩡해졌다
허기에 머문 영홍이 가장 멀리, 가장 깊이 볼 수 있다는 등식을 스스로 굳혔다
핏줄에 감긴 식탁의 청아한 울림,
그 소리는 나에겐 빛의 채석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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