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에 사과는 없었다

김덕진요셉 2011. 6. 13. 18:38

                    상자 속에 사과는 없었다/김덕진

 

설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어두운 욕망이 발가벗은 꿈 위로 투신하는 소리

 

어느 고층 빌딩의 지하 주차장

눈 한번 껌벅이지 않는 외눈박이의 시선을 따돌리고

조도가 낮게 깔린 구석에서

그들은 늦은 오후의 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파냈을 것이다

깊이를 알 수없는 늪으로 옮겨 실린 상자

박스에 인쇄된 사과는 여인의 볼처럼 빨갛게 웃고 있으나

검은 덫이 녹아있는 꿀물이

상자 속에서 출렁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과 상자를 뜯었던 누군가가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설사를 하느라 높은 건물의 화장실 불빛은

꺼지지 않았고 무엇을 얼마나 먹고

배탈이 났는지 물어도 그는 먹은 것이 없다며

모른다고 하였다

그가 설사의 후유증에서 해방되는 날은 수인번호를 떼고

새가 되어 하늘을 마시는 날

 

사과 상자 속에 사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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