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본위의 그림자/김덕진
어둠을 담은 밤이 씻기고 있다
비탈진 아스팔트골목길을 쓰다듬는 빗물이
가로등 불빛을 끌어 덮고
자잘한 보석이 되어 구른다
허기진 저녁의 입술너머에서
내장을 구석구석 핥은 취기로 물 보석을 밟고 오는
그림자 하나가 비틀거린다
이따금씩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술병 부딪히는 소리가
아물지 않은 밤의 상처를 꿰매는 소리처럼
허공에 매달린다
지구본위에 올라선 그림자가 미묘하게
중심을 잡고 돌아간다
한 번도 스스로
밟아 본 적이 없는 자신의 그림자 성분
그림자가 검은 색깔인 것은
남에게 밟혀도 그 무게를 침묵으로 헤아릴 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일으켜 세우지 못한 그림자를 데리고 가는
단풍 든 눈 속으로 젖은 밤이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