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대/김덕진
지구를 흔들어보았다
정제되지 않은 원유처럼 끈적거리는
생각만 비틀거렸다
손가락 끝에 각을 세우고 바람의 지문이 빼곡하게 찍힌
하늘을 긁어보았다
수많은 눈금들이
손톱자국 난 허공의 이랑을 채우고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삭제하지 못한 묵은 편견의 목록이었다
구겨진 잣대의 눈금들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암묵의 언어를 쏟아냈다
날카로운 이빨로
사람들의 마음을 스캔하는 일은 참으로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일이다
청산하지 못한 어설픈 판독의 오류는
언제나 수취인 불명의 반송품이었다
잣대의 눈금이 축적될 때마다
녹슨 현의 울림은 느슨해졌다
더 늦기 전에 오늘은 태양을 심어 가슴을 데우고 기울어진
눈금의 목록을 지웠다
몸속 현이 팽팽하게 조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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