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김덕진요셉 2021. 1. 9. 08:59

빗소리/김덕진

 

젖은 밤이 겸손하게 고개 숙인다

빗방울 죽는 소리가

이토록 아늑한 평화를 가져다주는 줄 전에는 몰랐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오늘하루의 끄트머리에서

구름이 빗방울의 자궁이었음을 다시 읽는다

자궁을 떠난 빗방울들이 기억을 지우는 소리 부풀어 오른다

마치 마당 한가득 널어놓은 콩꼬투리에

가을햇살이 꽂혀 터지는 함성소리 같다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내가 들었던

그 환한 물소리를 몸이 기억한다

영혼에 닿는 빗방울의 평화로운 죽음이 내 나이테를 적신다

수면유도제가 섞인 죽음의 리듬으로 눈꺼풀이 무겁다

 

고개 숙인 세상이 세례 받는다

신이 몰래 다녀간 발자국을 지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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