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카드

김덕진요셉 2021. 1. 14. 16:34

공중전화카드/김덕진

 

책상서랍을 정리하던 중에

언제부터 서랍 뒤로 넘어가

벼루처럼 누워있었는지 알 수 없는 내 지갑을 발견했다

헌 지갑 속에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지만

당시에는 잔액이 남았을 것 같은

오래된 공중전화카드 한 장 꽂혀있었다

아득히 먼 시간의 이면지에

눈사태 난 가슴에서 흘러내렸던 언어들이

잔설처럼 쌓인다

공중전화부스 안에 찍어 놓은 지문,

완결 짓지 못하고 도중에 끊겨버린 수많은 미완의 문장,

급하게 받아 적었던 아라비아숫자,

나의 내부를 흘렀던 이 모든 것들에 색깔을 입히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거슬러왔다

비밀을 가둔 좁은 공간으로 라면처럼 꼬불꼬불한 전화선을 타고

수화기 너머에서 불어오던 바람,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배불렀다

 

벽과 벽 사이에 흐르는 강을 건너기 위해

수없이 통과한 마그네틱신호등, 네가 있었다 내가 있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렁이는 비오는 날을 기다린다  (0) 2021.01.26
말, 굳은살 박이다  (0) 2021.01.21
빗소리  (0) 2021.01.09
한파주의보  (0) 2021.01.05
내가 옥상에 오르는 이유  (0) 2021.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