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

김덕진요셉 2025. 6. 10. 19:49

난독증/김덕진

 

하나의 가을을 건너는 것은

자작나무가 품고 있는 우주를 조금 더 깊이 들어다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낙엽을 풀리고

빈 항아리 속을 헹구는 바람을 붙잡고 싶었다

내 안에 품은 천칭은

늘 내 쪽으로 기울어진 사선을 유지했다

한 번도 내보인 적 없는 마음의 색깔을

이제는 불고 싶은 부는 바람에 칠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나무들이 잎을 터는 소리는 또 다른 숨소리여서

가을을 요약하는 낙엽에 아쉬움이 머뭇거렸다

나무가 털어놓은 수많은 잎사귀들, 바닥에 박음질 되어

노을을 삼킨 퀼트가 되었다

입안에 숨긴 문장 하나를 꺼내기 위해 매일 밤 얼마나 많은 이미지를 죽이고 살렸나

 

나는 세상을 일을 줄은 모르나 추락하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것은 안다

나는 탄알 한발 남은 권총 방아쇠를 태양을 향해

조준해서 당겼다

내 이름이 떨어지고 내 그림자가 쓰러지고 그 위에 내 목소리를 눕혔다

나는 따뜻한 바위속에 누웠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처럼 너그러울 수 있다면  (1) 2025.07.01
사냥  (0) 2025.06.22
쌀 포대 실을 풀다가  (0) 2025.06.03
황화 교장 가는 길  (0) 2025.05.31
물고기 벽화  (2)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