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김덕진
하나의 가을을 건너는 것은
자작나무가 품고 있는 우주를 조금 더 깊이 들어다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낙엽을 풀리고
빈 항아리 속을 헹구는 바람을 붙잡고 싶었다
내 안에 품은 천칭은
늘 내 쪽으로 기울어진 사선을 유지했다
한 번도 내보인 적 없는 마음의 색깔을
이제는 불고 싶은 부는 바람에 칠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나무들이 잎을 터는 소리는 또 다른 숨소리여서
가을을 요약하는 낙엽에 아쉬움이 머뭇거렸다
나무가 털어놓은 수많은 잎사귀들, 바닥에 박음질 되어
노을을 삼킨 퀼트가 되었다
입안에 숨긴 문장 하나를 꺼내기 위해 매일 밤 얼마나 많은 이미지를 죽이고 살렸나
나는 세상을 일을 줄은 모르나 추락하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것은 안다
나는 탄알 한발 남은 권총 방아쇠를 태양을 향해
조준해서 당겼다
내 이름이 떨어지고 내 그림자가 쓰러지고 그 위에 내 목소리를 눕혔다
나는 따뜻한 바위속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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